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내가 나의 인생을 유지하고 있다는 착각으로 살아 가는 우리 인간이지만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열심으로 유지시켜 주셔야만 인생은 유지된다.  그래서 로마서 11장 33 절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시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여기서 ‘주로 말미암고’ 라는 의미는 ‘sustained by God’ 이라고 영어 성경에는 번역되어 있다.  주님께서 열심으로 유지시켜 주셔야만 생명이 유지된다는 의미다.  들고 있는 축구공을 놓아 버리면 떨어져 버리듯이 우리의 생명도 하나님이 열심으로 지켜 주시지 않으시면 유지되지 않는다. 그래서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지난 주 금요일에 있었던 상황을 돌아 보면 주님께서 열심으로 붙잡아 주시고 유지 시켜 주신 나의 생명에 감사드릴 뿐이다.  부족한 자이지만 무엇인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 자신의 삶을 다시 한번 돌아 보게 하는 기회가 주셨고,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사명을 향하여 열심으로 달려가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 사도행전 20:24)  사명과 목표가 확실하면 좌로나 우를 쳐다 보면서 방황할 시간이 없다.  인생의 시간은 그 순간마다 주어지는 것이지, 어느 때까지 보장되어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 이 날이 사명을 위해서 뛸 수 있는 마지막 날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올 여름에는 선교팀을 Rio San Juan - 산 후안 강가 지역의 마을로 많이 보냈다.  지난 해에 마나구아에서 Rio San Juan까지 연결되는 도로가 생기면서 그 지역으로 선교팀을 보내고 선교 사역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도로가 좋지 않을 때에는 9 ~ 10시간 걸리던 지역이었다.  니카라과 정부가 그 지역을 관광지화 하기로 결정한 후, 외자를 들여와 큰 투자를 한 것이다.  선교사에게는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다.  그래서 재물/돈이 들어 가기 전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급한 마음에서 그 지역으로 선교를 시작했던 것이다.

지난 주간에도 선교팀을 먼저 보낸 후에 토요일 새벽 4시에 선교팀과 합류하기 위해서 마나구아를 떠났다.  총 여행 시간의 반쯤 지난 6시 경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60 마일도 달리는 길을 소낙비로 인하여 조심스럽게 운전하고 있는 중에 반대 쪽에서 오는 차가 나를 향하여 점점 다가 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대로 다가 온다면 내 차와 충돌하는 것은 불보듯 훤하다.  ‘설마 저 차가 이리로 ...’ 라는 생각을 하면서 불안한 마음으로  왼쪽으로 조금씩 피해서 움직였다.  길 옆의 둔덕으로 인하여 많이 피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내차의 운전사 쪽 보조 거울을 깨트리고 뒤의 범퍼를 건드리면서 큰 괭음을 만들어 내면서 지나갔다.  나 자신은 아무런 충격도 느끼지 못했다.  그냥 큰 쾡음으로 인하여 놀랐을 뿐이었다.  차를 정지시킨 후에야, 그 괭음의 실체를 보게 되었다.  내가 피했던 차는 나의 뒤를 따라오던 차를 충돌하며 다중 충돌을 유발한 것이다.  사고를 낸 운전사는 졸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상황을 살핀 후에 가야 할 길을 재촉했야 했다.  Rio San Juan 에 도착해서 배를 타고 두시간 가량 들어 가야 하는 곳인데, 배를 타는 시간을 놓이면 다시 하루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인생은 하나님이 열심으로 지켜 주셔야만 유지된다.  우리가 이 순간을 살고 있어도 사실은 그 삶이 보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께 허락하셔야 한다.  선교지에서 벌써 두 번의 큰 사고를 면하게 하신 주님께 찬양을 드린다.  오늘도 나에게 허락하여 주신 생명을 겸손함과 감사함으로 받는다.  생명의 존엄함을 다시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나에게 주어지는 하루 하루마다 축복으로 여기면서 목표를 향하여 열심으로 달려 가며 감사함과 기쁨과 평강을 누리며 살리라!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Tranquilo - 트랑킬로

안식년을 마치며

니카라과의 교육 현실